나는 모태솔로다. 남중 남고 공대를

나와서 여태껏 연애를 한번도 못해봤다.

친구들은 나보고 못생기지 않았다고 했고

성격도 착한 편이라고 했다.

조금 알고지낸 여자가 여태껏 10명정도

있는데 그중에 남친없는 여섯명에게

전부 대쉬를 했지만 다 까였다.

누가 그러더라. 길에서 백명 붙잡고

전화번호 물어보면 그중에 한명은

가르쳐줄꺼라고. 그래서 이대로

내청춘이 다하기전에 그말을 듣고

큰맘먹고 한번 시도해보기로 했다.

솔직히 처음이 가장 어려웠다.

버스정류장에 서있는 대학교 새내기로

보이는 여자애였는데 시발 내가 하는 짓이

미친짓같더라. 용기내서 말 걸었는데

(멘트도 연습했다.) 싫어요라는

대꾸조차 안하고 별 븅신 다보겠네

하는 식으로 똥씹은 표정 짓더라.
하지만 이쯤에서 포기하고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연습이라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솔직히 내 예상으로 열명중에 한명은

연락처를 줄줄 알았다.

그런데 열한명이 넘어가자 그만둘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렇지만 스무명까지만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도전했다.

진짜 나 자신이 벌레가 된 기분이었다.

열일곱명째쯤 되었나. 갑자기 이상한

자신감이 붙더라. 여자가 나한테

연락처를 줄거라는 자신감이 아니라

큰 좌절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내길을 가는 모습에 스스로 탄복했다.

그래서 스무명의 연락처를 받지 못하고도

집으로 올땐 매우 의기양양한 기분이 되었다.





 


다음날 깨끗하게 목욕을하고 풀세팅으로

외모를 꾸몄다. 그리고 전날 상상한 여러가지

대화법과 멘트 시뮬레이션으로 나의 자신감은

만땅으로 차올라있었다.

때마침 평소에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던

엄청난 ㅅㅌㅊ 미녀가 지나가길래 가서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평창동 사는 XX라고

하는데요. 길을 가다가 눈에 띈 그쪽이

너무 예쁘셔서...... 어렵지만 용기내서

말을 걸게 되었어요. 괜찮으시다면

연락하고 지낼 수 있을까요?"
...
남친 있다고 하더라.
하지만 뭔가 자신감 넘치는 나의 모습에

살짝 압도된것 같아서 해보자는 의욕이

솟구쳤다. 그리고 그날 도합 서른명이

넘는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번호를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십두명인가 세명정도 말을 거니까

이제 할만큼 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냥 살다보면 좋은 인연이 있을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이렇게 기다리기만 했기 때문에 여자가

안생기는 거"란 생각이 스치면서

다음날 또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 다음날엔 전날만큼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백명은 채워보자는 오기로 다시

길에나서서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흘간 칠십여명의 여성에게

말을 걸었지만 연락처를 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쯤되니까 모든게

민폐같고 그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그게 작년 여름 일인데

올해까지 여전히 모태솔로다.
나는 내년이면 서른이 된다.

 

-원작자 아침부터 팬티내림 님 글

외할머니는 이모랑 6.25때 

피난을 왔다.

원래는 평양에서 중산층이었다고...

고로 나한테는 북괴의 피가??


전쟁통에 피난 오셔서

정착하신 곳이 강원도 원주,

여기서 아직 살고 계신다.


하루는 삶은 감자를 으깨서

이제 대여섯살 된 이모랑

대충 아침을 먹고


낮잠 자는 이모를 두고

밭에 나가서 감자도 딸겸

밭에 갔다고 한다.


그렇게 외할머니 밭일 하다

옆집 밭일도 도와주다 보니

어느덧 저녁무렵.


애 혼자 깨서 울고 있을까봐

부랴부랴 집에 갔는데... 글쎄...


이모가 아래 같은...창호지 문을 

나무살과 종이를 싸-악 분리해놓고

가지런히 무릎꿇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소리가.


오마니. 내래 배가 매우 고픕니다.

아사할 것 같으니 먹을 것 좀 주시오...

집에 갈 기운이 없소...







이렇게 십대 중반에서 이십대 같은

북한 남자 말투로 저런 말을 하는데

대여섯살인 애가 쓸 문장 수준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래 자네 집이 어딘가?

하니

내래 함흥 사람이오... 

배가 너무 고픕니다.


외할머니가 직감적으로 

'저건 내 딸이 아니다.'라고

생각했대. 

그래도 전쟁도 겪었고,

익숙한 북한 사투리라 

뭔가 딱한 생각이 들어 

아이에게 좀 기다려보게라고 하고

마을에서 귀신 좀 보는 할매를

데리고 왔는데, 배곯은 괴뢰군이

붙었네라며 귀신밥그릇은 

박바가지라고 박으로 된 바가지에

먹을거 최대한 많이 갖고 오라해서

갖다줬는데...


애가 먹기에는 터무니 없는 양인데

순식간에 비웠다고 해.


귀신보는 할매가 

다 자신 거 같으니 배웅하소.라고

외할머니한테 말해서

다 잡수셨으면 부모님 뵈러

가야 않겠소. 그러니


아이가 오마니 감사합네다...

정말 감사합네다. 감사합네다.

이 은혜 저승가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그러더라네.


그렇게 한참을 울던 이모는

울다 쓰러지고, 일어나서는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했다고 해.


출처 - 익명인 분이 쓴 글이라 그냥... 익명

몇년 전의 얘기다.


내가 다니던 회사의 어떤 부서에 

조선족 처녀 하나가 들어왔다.


연변쪽에서 대학을 다니던 여학생인데 

교환학생으로 서울에 들어왔다가


통역겸 알바로 일하게 된 모양이었다.


당시 우리 회사는 중국의 몇몇 회사에 

하청을 주고 있었던 터라


조선족 여자가 일하는게 그리 이상한 

모양새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 아가씨 공부를 참 열심히 하더라. 

퇴근시간 뒤에도 자리에 남아 


이어폰을 꽂고 영어공부 같은 것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기특한 나머지 가끔 자판기 커피를 

뽑아서 같이 나눠마시곤 했다.







그러다가 아침 출근 시간에 버스 

안에서 마주친 적이 있었다.


당시 그 아가씨는 좌석에 앉아 있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자 쩔쩔매며 

자리를 양보하더라. 


어느정도의 직급은 있었지만 

내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데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그냥 문화 차이라고 이해했다. 

아니면 한국문화의 이해도가 낮거나.


그래서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했다. 

양보는 장애인이나 노인들에게 하는 

거라고 친절히 가르쳐 주었다.



사내식당에서 가끔 밥도 같이 먹었는데 

사람이 그렇게 예의바를 수가 없었다.


그때는 어눌한 말투와 어색한 표정도 

한국문화에 녹아들어가는 과정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뭐라도 하나 챙겨주고 싶어서 

내가 보던 영어 교재들을 뭉텅이로 

갖다 주곤 했다.


그때마다 고마워서 어쩔 줄을 모르던........




그러던 어느날, 회사 엘리베이터에서 

그 처녀를 단 둘이 맞닥뜨렸댔다.


서로 아침 인사를 나누고 

기분 좋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출근하기 전 

아침뉴스에서 중국이 짝퉁왕국이라는 

얘기를 듣고 왔다는 점이었다.


(미안하다. 순진했던 나는 조선족의 고향은 

중국이 아니라 한국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무심코 그 얘기를 하면서 

'중국은 아직 멀었어'라는 말을 내뱉었다.


................................



10초만에 120킬로로 가속되는 

자동차가 뭐라고? 페라리?


난 5초만에 혈압 200으로 가속되는 

여자를 보았다.



갑자기 얼굴이 잘 익은 홍시마냥 

타오르더니 내게 끔찍한 목소리로 

고함을 치더라


'중국이 뭐가 어때서요!'


'한국이 마냥 중국보다 잘 살것 같습네까?'


'솔직히 같잖습니다.'


....................................


8층까지 올라가는데 

80분 걸리는 줄 알았다.


난 너무나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다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내 자리로 도망쳤다.


같은 회사를 다니다 보니 그 이후로도 

자주 마주쳤는데 도저히 말을 섞을 수가 없더라.


그 아가씨도 목례만 보내고 황급히 

지나칠 뿐 예전과 같은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몇달 뒤 그 아가씨는 회사를 그만두었고 

내게는 소중한 교훈이 하나 남았다.  


조선족은 뼛속까지 철저한 중국인이다- 

라는 사실이다.



아, 바보같던 그 시절.







[출처] 조선족을 무서워하게 된 썰.ss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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